1. 그날 새벽, 도시는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2025년 3월 19일, 이스탄불은 이례적으로 조용했다. 비상등이 켜진 시청 앞, 언론사 차량들이 속속 도착하는 사이, 검은 옷을 입은 경찰들이 시청 건물 안으로 줄지어 들어갔다. 그리고 곧, 터키 전역을 뒤흔드는 뉴스가 전파를 탔다.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 전격 체포.”
도시의 심장부를 관통하던 이 뉴스는 마치 거대한 지진처럼 흔들림을 안겼다. 많은 이들에게 그는 단지 시장이 아니라 ‘변화를 향한 희망’이자 ‘에르도안 체제에 맞선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었다. 그 상징이 한순간에 철창 너머로 사라질 수 있다는 현실은, 시민들에게 단순한 충격을 넘어 깊은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2. 조용한 시작, 거대한 싸움
이야기는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마모을루는 상대적으로 무명이었다. 그러나 공화인민당(CHP)의 후보로 출마한 그는 여당의 강력한 인물, 빈알리 윌드름을 상대로 팽팽한 접전을 벌였고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것은 단순한 선거가 아니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 이스탄불에서의 패배는 AKP에게 있어 정권 기반의 균열이 시작됨을 의미했다.
이 충격에 여당은 즉각 반응했다. 선거 결과 무효. 재선거 실시. 모든 것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마모을루는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한 지지를 얻으며 재선거에서도 더 큰 표차로 승리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단순한 정치인을 넘어 하나의 상징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3. “그는 도시를 바꾸려 했고, 사람들은 그를 믿었다”
시장으로 재임한 이마모을루는 쇼맨십보다 실용을 택했다. 교통 인프라를 재정비하고, 청년 주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았으며, 무엇보다도 2023년 대지진 당시 이스탄불의 지원 시스템을 신속히 가동하며 많은 생명을 구했다.
시민들은 그런 그의 모습에 신뢰를 보냈고, 2024년 지방선거에서는 58%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당시 한 외신은 이렇게 평가했다.
“터키 시민들은 효율과 정의를 동시에 말할 줄 아는 정치인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런 상승세는, 결국 또 다른 힘과 부딪히기 시작했다.
4. 그림자 속 혐의들, 사법이라는 이름의 정치
2020년, 한 민원이 조용히 접수되었다. 이마모을루의 학위가 위조됐다는 주장. 키레네 아메리칸 대학에서 이스탄불대로의 편입이 정당했는지를 따지는 민원이었지만, 그 결과는 정치적으로 파괴력이 컸다.
2023년 말, 법원은 그의 학위를 무효화했다. 대법원까지 이 판결을 확정하며, 이마모을루는 대통령 출마 자격 요건인 ‘고등교육 졸업’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사법의 칼끝은 우연히 그를 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후 이어진 것은 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2025년 3월, 검찰은 그를 ▲범죄조직 운영 ▲뇌물수수 ▲입찰 조작 ▲PKK 연계 혐의 등 총 7개 중범죄 혐의로 체포했다. 특히 ‘테러단체 지원’이라는 항목은 명백히 쿠르드계 야당(HDP)과의 선거 연대를 겨냥한 것이었다.
5. 조용히 터진 분노, 거리로 향한 목소리
그의 체포 소식이 알려진 날 밤, 터키의 거리에는 다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게지 공원 이후 가장 큰 규모였다. 이스탄불은 물론, 트라브존, 앙카라, 디야르바키르, 심지어 전통적 보수 지역인 카이세리까지. 젊은이들이 손팻말을 들고 “이마모을루에게 자유를!”을 외쳤다.
주목할 점은 이 시위대의 구성이다. 전체 참가자의 30% 이상이 25세 이하의 청년층.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채널을 통해 빠르게 조직되고, 퍼졌다.
6. 바깥 세계의 눈, 흔들리는 경제
국제사회의 반응도 빠르고 강력했다.
유럽연합은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 했고, 독일은 “터키의 사법 신뢰성에 근본적 의문을 갖게 된다”고 비판했다.
미국 국무부는 “정치적 동기를 배제한 공정한 절차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터키 외교부는 “내정 간섭”이라 반발했지만, 이미 시장은 반응하고 있었다. BIST100 지수는 사흘간 16% 급락했고, 터키 리라는 달러 대비 3.7% 가치가 하락했다. 외신들은 “터키 정치의 불확실성이 다시금 경제를 흔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7. 변화의 서막, 혹은 억압의 연장
이 사태는 단지 이마모을루라는 한 정치인의 부침을 다루는 이야기가 아니다. 1994년, 에르도안이 이스탄불 시장으로 정계에 등장했을 때처럼, 이 도시는 터키 권력의 심장이다. 그리고 지금, 이마모을루는 같은 자리에서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한 정치학자는 말했다.
“터키는 지금 두 갈래 길 앞에 서 있다. 한쪽은 억압을 통한 질서 유지, 다른 한쪽은 혼란을 감수하고라도 나아가는 변화의 길.”
8. 이마모을루가 남긴 말
그가 구금되기 전, 기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조용했지만 무거웠다.
“이 싸움은 저 하나만의 싸움이 아닙니다. 정의와 자유, 그리고 이 도시에 대한 사랑의 싸움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터키 시민들은 그 말의 의미를 곱씹으며 거리로 나서고 있다. 어쩌면, 진짜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